뇌의 오작동

야근은 버릇이다.

밀리Milli 2022. 11. 28. 17:07

 

한국 회사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미국 회사에서 야근은 그다지 권장되지 않았다.

 

처음 미국 회사에 취직했을 때 열정에 넘쳐서 늦게 퇴근하니까 매니저가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는 것이다. 알고 봤더니 쓸데없이 야근이 잦은 사람은 열심히 하는 사람이 아니라 업무 시간 안에 일을 끝내지 못하는 사람으로 간주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욕심나는 일은 몰래 집으로 가져가서 작업하곤 했었다.

 

그래도 회사로 출근할 때는 미국 회사 문화에 익숙해져서 퇴근시간만 되면 칼같이 일어나는 생활을 했었는데 그때가 좋았지, 문제는 코로나 이후 자택 근무를 하면서 생긴다. 일과 개인 시간의 경계가 허물어진 것이다. 

 

자택 근무라는 것은 일단 한 번 맛을 보면 다시 회사로 출근하는 생활로 돌아가긴 힘들다.

일찍 일어나서 옷 제대로 챙겨 입고 출근 지옥을 거쳐서 회사에 도착하면 이미 지쳐있는 모닝 루틴이 사라지는 것이다. 이 것만으로도 엄청난 삶의 질의 향상이다. 게다가 집에서 혼자 일을 하다 보니 추리링 차림으로 세상 편하게 일을 할 수 있고, 누가 지켜보는 것도 아니니 미팅 시간에만 참석하면 편한 대로 업무 시간을 관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2년 후 코로나는 진정이 되고 아무도 밖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는 환경이 되었지만 당연하게도 아무도 다시 회사로 돌아가고 싶어 하지 않았다. 나 역시 동료들과 얼굴을 마주하고 일을 하며 잡담도 나누는 환경이 그립긴 하지만 일단 출근을 하면서 소비하는 에너지와 스트레스를 한 번만 떠올려도 답은 명확했다. 

그리하여 대부분의 회사들이 평생 자택 근무로 근무 환경을 바꿨고 현재 내가 다니는 회사는 오피스 자체도 없다.

 

갑자기 자택 근무 찬양을 하고 말았지만 본론으로 들어가서 오늘 하려고 했던 이야기는 자택 근무의 단점이다. 

업무 시간 10분 전에 일어나서 파자마나 추리링 차림으로 하루를 시작했던 꿈같은 상황도 2년쯤 되니 본인의 게으름에 감탄할 정도가 돼버렸고, 추리링 차림으로 삐딱하게 앉아서 누가 보는 것도 아니니 유튜브나 팟캐스트를 옆에 띄워놓고 설렁설렁 일하다 보면 집중력이 뭔지 밥 말아먹는 건지 어떻게 집중했는지 까먹어 버리는 상황이 된 것이다. 

어쩐지 자꾸 오밤중까지 일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는데 그 이유 첫 번째는 저렇게 루즈하게 일했으니 업무 시간 안에 제대로 일을 끝냈을 리가 없고, 두 번째는 집에서만 있으니 시간 감각이 무뎌지고 특별히 할 일도 없으니 하던 일을 계속 붙잡고 있는 것이다. 그야말로 버릇처럼 하루 종일 일만 하고 있는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 단점은 완전히 케이스 바이 케이스이다. 나의 경우에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오래전에 일 년 정도 프리랜서로 일했을 때도 똑같은 문제가 있었는데 나란 인간은 근본적으로 게으르기 때문에 혼자 놔두면 이렇게 되고 마는 것이다. 

 

열정에 넘쳐서 좀 더 잘하고자 하는 마음에 야근을 하는 것은 상관없지만 지금 하고 있는 버릇 야근은 그야말로 인생의 낭비라고 생각된다. 다시 회사로 출근하고 싶은 마음은 없으니까 어떻게든 고쳐야 할 문제인 것...  

아니 근데 왜 항상 결론은 자기반성으로 끝나지?